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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기병대의 피가 흐르는 장갑차의 역사
  |  입력 : 2017-08-13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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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독자기술로 개발한 차륜형 장갑차가 탄생하기까지

[보안뉴스 성기노 기자] 장갑차는 재미있는 전략 무기다. 역사도 오래됐다. 장갑차의 유래는 현대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장갑차는 중세의 기병대를 연상시키는 보병의 핵심적인 전략무기다. 왜 그럴까.

[이미지=iclickart]


중세의 전쟁에서는 적의 중심을 타격하기 위해 기병대를 조직해서 적진을 돌파하는 작전을 주로 사용했다. 기병의 주 임무는 적진을 돌파해서 적의 전열을 무너뜨리고 적의 중심을 그대로 타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화약의 발전으로 전쟁의 양상이 달라지면서 중무장 기병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개인 소화기를 보유한 보병, 그리고 장거리 포격이 가능한 포병이 차지하게 됐다. 이제 전쟁은 원거리에서 적을 타격하고 유리한 지점을 선점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그럼에도 중세나 현대나 변하지 않는 군사전략 가운데 하나는 적진의 중심을 어떻게 신속하게 파괴하느냐에 달려 있다. 전략의 기본은 적진을 뚫고 들어가 적의 중심을 단번에 타격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은 이것을 더 이상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지리멸렬한 참호전으로 유명하다. 야포와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진지를 돌파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보병들이 진격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참호에 잔뜩 웅크리고 있다가 적이 공격하면 반격하는 형태가 됐기 때문에 ‘돌격 앞으로’ 했다가는 큰 전력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보병이 ‘맨땅에 헤딩’하는 것이 아닌 보병을 보호하면서 적진을 뚫을 ‘뭔가’가 필요했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바로 전차다. 전차가 등장하면서 다시 한 번 전쟁의 양상이 달라졌다. 전차는 적진을 단숨에 뚫고 들어가 적의 중심을 타격함은 물론 적의 후방으로 침투해서 적을 포위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였다. 전차는 참호전으로 유명했던 제1차 세계대전 말에 등장했다. 필요가 발명을 낳은 것이다. 그 뒤 전차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장의 주역으로 등장한다. 항공기의 발전으로 전략폭격을 통해 적의 중심부를 공격하는 것이 가능해졌지만 적의 중심부를 대량으로, 직접적으로 타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차의 등장은 획기적이었다. 전차를 이용한 고속 기동의 돌파 전략·전술은 전격전이란 이름으로 독일이 전쟁 초반에 승기를 잡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이는 빠른 돌격으로 적의 중심을 공격해 전의를 단숨에 상실시킨다는 전략을 현실화한 것이었다.

그러나 전차의 고속기동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군사전문가들은 전차의 아쉬운 점을 지적했다. 전차가 고속 기동을 통해 적진을 제압할 수는 있지만 그 지역을 신속하게 장악할 ‘병력’이 아쉬웠던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보병이 담당해야 할 성격의 임무였다. 하지만 시속 90km를 넘나드는 전차를 보병이 어떻게 쫓아갈 수가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전차만 덩그러니 적의 중심에 도착했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었다. 도보에 의존하는 일반보병의 이동속도로는 기동력이 우수한 전차와의 원활한 협동작전이 곤란했고, 결국 보병이 전차와 함께 제대로 된 협동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차량’을 통해 보병부대를 이동시켜 전차에 버금가는 기동력을 제공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전차와 함께 보병이 기동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화력이 막강한 전차들의 공격에 직접적으로 노출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결론이 ‘전차처럼 일정 수준의 장갑 방호능력도 갖추면서 기동력도 갖춘’, 어떤 ‘차량’이 필요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장갑차였다. 초기 장갑차는 전차를 개조해 내부에 30명 정도를 탑승시킬 수 있게 하였지만 점차 별도의 수송무기로 개발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전차에 버금가는 화력을 갖춘 장갑차도 개발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장갑차는 트럭 형태의 수송차량에 최소한의 장갑 방호능력을 부여했지만, 이후 방호능력과 화력이 개선되면서 지금의 장갑차에 이르렀다.

현대전은 전차보다 장갑차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전차의 파괴력과 방호능력에, 보병의 이동수단까지 겸비한 장갑차가 훨씬 더 효율적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장갑차 ‘역사’는 멀리 해방 전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는 해방 후 1948년, 미군으로부터 M2, M3 반 궤도 장갑차 24대와 M8 그레이하운드 차륜형 장갑차 24대를 공여 받아 ‘한국 차륜형 장갑차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특히, M8 그레이하운드는 국군의 유일한 기갑 전력이었기 때문에 화력이 부족한 국군의 중요 전력 중 하나였다. 6.25전쟁 이전에는 38선 부근을 지켰으며, 전쟁 이후 T-34 전차를 상대로 응전하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 북한의 무력도발과 전쟁 상황에 대비할 목적으로 차륜형 장갑차에 대한 수요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이탈리아의 FIAT6614를 선정해 면허생산하게 된다. 우리 군은 이 차륜형 장갑차에 제식 명칭 ‘KM900’을 부여했다. 비록 ‘면허를 받아 생산하는 것’이었지만 우리가 생산한 첫 장갑차였다.

그 뒤 2000년대에 이르러 1970년대 개발한 차륜형 장갑차 KM900은 노후화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 때문에 우리 군은 차기 차륜형 장갑차 도입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현대로템은 ‘KW 스콜피온’을 시제품으로 내놓은 뒤 2012년 차기 차륜형 장갑차 도입 사업자에 선정됐다. 사업에 선정된 현대로템의 KW 스콜피온은 병력 수송 버전으로 ‘K806’, 보병전투 버전으로 ‘K808’이라는 제식 명칭을 부여받게 되었다. 현대로템의 장갑차는 1948년 미군으로부터 우리가 공짜로 공여 받은 48대의 장갑차 역사 이래, 70여년 만에 우리의 독자적인 기술로 개발한 순수한 국산 무기다. 이렇게 우리 방위산업의 역사도 흐르고 있다.
[성기노 기자(kino@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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