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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과학연구소, 국가 최고의 연구기관으로 거듭나라
  |  입력 : 2017-09-13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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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등 주변국과 정권의 요구 및 필요에 따라 흥망성쇠 겪어
북한의 핵실험 등 엄중한 안보상황, 국가 최고의 연구기관으로 자리매김해야


[보안뉴스 성기노 기자] 국방과학연구소는 국내 유일의 국방과학 전문연구기관이다. 올해 8월 창설 47주년을 맞았다. 지난 1970년 8월 6일 창설한 국방과학연구소는 지금까지 각 전장에서 운용 중인 281종의 무기를 국산화, 명실상부한 자주국방의 시대를 연 중추였다. 또 지금까지 국방연구개발에 25조원을 투자해 297조원의 경제 효과를 창출해 국가경제에도 크게 기여했다.

[사진=국방과학연구소 홈페이지]


국방과학연구소가 지금과 같이 세계 수준의 국방과학 전문기관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일찍부터 그 ‘씨앗’을 뿌렸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 국방과학연구소만큼은 통치자가 굳은 의지를 가지고 성공시킨 대표적인 국가연구기관 모델이다. 박 전 대통령의 의지도 중요했지만, 설립 당시의 국제정세가 우리 스스로 무기를 개발하도록 강요하는 측면도 있었다.

1970년 연구소가 설립될 당시는 베트남전이 한창이었다. 미국은 그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고 그 여파로 심각한 경제 불황을 겪고 있었다. 미국은 아시아를 돌볼 처지가 되지 못했다. 1969년 7월 닉슨 미국 대통령은 괌에서 대아시아정책 5개 조항을 발표한 소위 닉슨독트린으로 한미관계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아시아문제는 아시아 국가가 스스로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이런 국제정세를 간파한 박 전 대통령은 우리 힘으로 독자적인 전력증강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었고, 국방과학연구소는 그 프로젝트의 중심에 있었다. 국방과학연구소의 역할이 곧 박 전 대통령과 대한민국의 존립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했다.

당연히 연구소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은 클 수밖에 없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불시에 국방과학연구소를 찾곤 했다. 극비리에 경호원까지 위장시켜 연구소를 불시 방문해 연구원들을 격려해 주었다. 격려 차원도 있었지만 ‘농땡이’를 치는 것은 아닌지 감시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국방과학연소 연구진은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자녀학자금은 물론, 주택, 자동차도 주고 심지어 김장보너스까지 지급하는, 대통령의 묵인 아래 ‘초법적 대우’를 해주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미국에 의존하고 있던 개인소화기를 비롯한 기동화력장비, 각종 직․곡사 화기 및 탄약, 군화와 피복, 전투비상식량에 이르기까지 모든 군사물자를 ‘번개’처럼 빠른 시일 내 개발할 것을 명하고, 무기체계 국산화사업을 ‘번개사업’이란 이름으로 독려했다. 박 전 대통령은 전력증강5개년계획을 율곡선생의 양병론에 근거한 위장으로 ‘율곡사업’이라 명명하며 비밀리에 진행했다. 이 과정에 국방과학연구소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 서울에는 ‘홍능기계’ 대전에는 ‘신성농장’(대전기계창), 진해에 진해기계창, 충남태안에는 안흥측후소(시험장)란 위장명 전력증강 연구개발사업을 통한 무기체계 국산화에 목숨을 걸었다는 게 당시 연구진들의 훗날 증언이었다.

당시 박 대통령이 지시한 한국군 전력증강목표 계획에는 오늘의 한국 안보 환경변화를 예견한 전략 및 첨단 고도정밀 무기체계의 개발이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국방과학연구소 최대의 현안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거센 반대 때문에 핵무기 개발은 각종 난관에 부딪혔다. 만약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를 당하지 않았다면, 민주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우리는 북한보다 훨씬 먼저 핵무기를 보유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와 같은 북한의 핵 위협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안보는 그만큼 장기적인 비전과 소명의식이 중요하다.

박 전 대통령이 갑자기 서거하면서 국방과학연구소는 공중분해 되다시피 한다. 핵무기 개발을 지켜본 미국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미국의 지시에 의해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국방과학연구소의 핵무기 관련 실험시설과 장비 등을 전부 뜯어내 건축폐기물 트럭에 실어나갔다. 관련기술문서는 종이 한 장 없이 깡그리 불태워졌다. 목숨을 걸고 연구했던 자료들이 그렇게 폐기되자 당시 연구진들 가운데 기절해 이틀을 깨어나지 못했던 사람도 있었고, 헛소리를 지르다가 폐인이 된 정신이상자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상황을 겪었던 한 생존 연구진은 “우리는 총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다가 하루아침에 무기를 빼앗긴 패잔병 신세가 됐다”고 한숨지었다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 시 국방과학연구소는 그 자율성이 최대한 보장된, 상당히 이상적인 연구기관이었다. 어떤 부서도 그곳을 터치할 수 없었고, 독자적인 활동을 위해 예산지원도 전폭적이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때 과거 핵무기와 첨단무기 연구시설을 대부분 없애버렸고, 그 이후 대북 화해정책을 밀어붙인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대대적인 조직개편과 인력감축이 지속되었다. 그 과정에서 국방과학연구소는 정권교체와 잦은 국방수뇌부 및 연구소 지휘계통 경질로 창설 멤버가 대부분 교체되어 버렸다. 1997년경에는 조직개편 횟수가 무려 75회에 이르렀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로 국방과학연구소 조직은 한마디로 ‘누더기’가 되다시피 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당장 수익을 내지 못하는, 먼 미래를 보고 투자하고 기술개발을 해야 하는 분야는 도태되고 사라졌다. 대신 다른 국가출연 연구소와 비교해 경쟁을 유도,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 실행되었다. 국방과학연구소에도 시장논리가 등장한 것이다. 당장 사업 타당성이 없는 분야는 ‘구조조정’ 되었고, 국제경쟁력이 있는 것에만 투자를 하게 되었다. 시장논리로 구조조정에 접근한 것은 국가안보 원형기술을 경시한 탓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당연히 국방과학연구소 위상도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많다.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이 국방과학연구소 안흥시험장을 방문했을 때 연구소가 개발 중인 사거리 800㎞의 현무2C 탄도미사일이 과녁을 정확히 명중하자 모두 환호성을 올렸다. 이때 개발에 참여한 한 연구원의 눈물이 작은 감동을 준 적이 있었다. 그 연구원의 눈물은 한때 국가최고의 연구기관에서 이제는 그 존재도 알 수 없는 처지로 전락한 설움에서 오는, 작은 한풀이는 아니었을까. 국방과학연구소는 우리의 미래와 후손들을 위한 국가최고의 연구기관이 되어야 한다. 다시, 문재인 대통령이 그 사명을 일으켜 세웠으면 한다.
[성기노 기자(kino@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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