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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분야 대표적 개인정보 유출, ‘PM2000’ 사건 판결문 뜯어보니
  |  입력 : 2019-06-10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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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번호 4,830만 건 민간 기업으로 넘어간 ‘PM2000’ 개인정보 유출사건
개인정보 수집 및 비식별화 모두 문제 인정됐지만... 손해 여부에서 ‘발목’

[보안뉴스 양원모 기자] 약국관리 프로그램 ‘PM2000’의 개인정보 유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피해자인 원고 측이 1심에 이어 또 다시 패소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달 3일 원고 472명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며 1심과 마찬가지로 “손해 발생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미지=iclickart]


2013년 12월 언론 보도로 처음 알려진 이 사건은 대한약사회 산하 약학정보원이 개발한 조제 관리·심사청구 프로그램 PM2000를 통해 등록된 환자, 의사 개인정보 수십억 건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글로벌 의료데이터 업체 한국IMS헬스로 넘어간 게 핵심이다. 개인정보에는 환자 이름, 주민등록번호, 의사 면허번호, 조제 내역 등 민감한 정보가 다수 포함됐다. 한국IMS헬스는 이 정보를 제공받는 대가로 약학정보원에 수십억 원을 건넸다. 현재 이 사건은 민사와 별도로 형사재판 1심이 진행 중이다.

수사 과정에서 개인정보 유출이 실제 확인됐는데도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법원 판단은 이른바 ‘리걸 마인드(Legal mind·법률적 사고)’로 사건을 보지 않는 이상 표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게 사실이다. 이에 <보안뉴스>는 총 140장 분량의 1·2심 판결문을 입수해 패소까지의 과정을 살펴봤다. 왜 법원은 피해자가 아닌, 피고 측 손을 들어줬을까?

허술했던 개인정보 비식별화
개인정보가 유출돼도, 그 내용이 알아볼 수 없게 암호화돼 있다면 개인정보로서의 가치는 없다. 개인정보를 다루는 모든 기관이 암호화 방식에 주의를 기울이는 이유다. 이번 사건에서 개인정보의 핵심인 주민등록번호는 총 3기에 걸쳐 각자 다른 방식으로 암호화됐다. 그러나 각 과정은 “허술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만큼 안일하게 진행됐다.

2011월 1월 말부터 2014년 6월까지는 주민등록번호 13자리 중 홀수, 짝수 자리를 알파벳별로 대응시킨 다음 양끝 2자리에 임의의 알파벳을 추가하는 방식이 사용됐다. 이 암호화 방법을 제안한 곳은 다름 아닌 한국IMS헬스였다. 정보 취득자가 애초부터 복호화 방식을 알고 있었던 것. 법원이 ‘1기 암호화’라 이름 붙인 이 방식으로 한국IMS헬스에 제공된 주민번호는 검찰에 따르면 최소 4,830만 건(중복 포함)이다.

[캡처=약학정보원 홈페이지]


1기 암호화는 암호에 대한 기초지식만 있어도 쉽게 복호화가 가능했다. 행정안전부는 약학정보원에 “암호화가 부실하다”며 행정지도 명령을 내렸다. 이에 약학정보원은 2014년 6월부터 ‘SHA-512’라는 방식으로 주민번호를 암호화하기 시작했다. SHA-512는 특정 데이터를 숫자와 알파벳으로 구성된 128자리 값으로 바꾸는 해시 함수로, 복호화가 불가능한 게 특징이다. 1기 암호화에 비해 안전성이 대폭 강화된 방식이었지만, 문제는 한국IMS헬스에 전달된 데이터 형태에 있었다. 1기 암호화 방식의 주민번호와 2기 암호화 방식의 주민번호를 매칭시켜 어떤 주민번호가 바뀐 건지 알아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주민번호 대신 환자 성명, 성별, 생년월일을 SHA-512로 암호화한 ‘3기 암호화’ 방식도 2기와 마찬가지로 데이터가 매칭돼 제공됐다. 한국IMS헬스는 “1기 암호화 방식을 2, 3기 암호화 방식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주민번호의 동일성을 파악하기 위해 매칭 테이블을 제공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2심 법원은 “2, 3기 암호화 방식도 1기 암호화 방식과 결합하여 개인을 식별할 수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주민번호의) 식별 가능성을 판단할 때 정보 수령자의 주관적 의도, 동기, 활용방법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정보주체는 약사가 아닌, 환자”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개인정보처리자는 개인정보를 수집할 때 반드시 정보주체의 동의(15조)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정보주체는 누구일까. 환자 개인일까, 환자에게서 정보를 위탁받은 약사들일까. 아니면 PM2000을 개발한 약학정보원일까.

약학정보원과 한국IMS헬스는 정보주체가 약사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재판 과정에서 “PM2000을 통해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약사들의 동의를 얻었다”며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로 약학정보원은 2011년 1월 한국IMS헬스에 개인정보를 제공할 목적으로 진행한 PM2000 업데이트 과정에서 ‘통계용, 학술용 정보의 수집에 관한 동의’ 항목을 약관에 추가하고 팝업을 띄워 약사들의 동의를 구했다. 동의하지 않으면 업데이트는 진행되지 않았다.

[이미지=iclickart]


하지만 1·2심의 견해는 반대였다. 1심은 “약학정보원이 수집한 개인정보의 주체는 처방받은 환자들”이라며 “개인정보보호법이 시행된 2011년 9월 30일 이후 개인정보를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수집한 것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적시했다. 2심도 동일하게 판단했다.

특히, 2심은 개인정보보호법 18조 2항 4호에 명시된 ‘통계 및 학술연구 목적의 비식별 개인정보 제공’에 대해서도 약학정보원과 한국IMS헬스가 적법한 개인정보 수집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특히, 1·2·3기 암호화 과정이 충분한 개인정보 비식별 과정을 거쳤다고 볼 수 없어 피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수집부터 비식별 처리까지 모든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한 것이다.

손해, 그 애매한 존재
여기까지만 보면 원고가 왜 졌는지 이해가지 않을 수 있다. 1·2심은 가장 핵심적 사안인 ‘손해 발생’ 여부에 대해 조금 다르게 판단했다. “정보 유출로 발생한 손해는 없다”는 것이다. 법원은 유출로 정신적 손해가 발생했는지는 7가지 사정을 따져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유출된 개인정보의 종류와 성격 △유출된 정보로 정보주체를 식별할 가능성 △제3자의 개인정보 열람 여부 또는 열람 가능성 △유출된 개인정보의 확산 범위 △유출에 따른 추가 법익침해 가능성 △평소 개인정보 관리 실태 등이다.

1·2심이 먼저 주목한 건 ‘제3자 유출’ 여부였다. 1심은 “한국IMS헬스의 관리체계, 사업목적에 비춰볼 때 제3자가 개인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거나, 열람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워 보인다”며 “(설령) 제3자가 (정보를 습독했다고 해도) 특정 개인을 식별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2심 역시 “개인정보의 수집 경위, 목적, 이용 방법 등을 고려하면 정보의 유출범위는 제한적이라 통상의 제3자에게 유출된 경우와는 차이가 있다”고 판시했다.

1·2심은 그러면서 유출된 정보가 범죄에 악용되지 않은 점을 강조했다. “원외 조제의약품 시장의 추정분석을 위한 통계자료 작성에 활용됐을 뿐 마케팅을 위한 스팸메일 전송에 사용되거나 신분 도용에 사용되는 등의 2차 피해를 발생시키지 않았다.”(1심), “회사(한국IMS헬스)는 개인정보를 통계자료 목적으로 활용하였을 뿐, 범죄에 이용되거나, 그밖에 원고들의 권익을 해할 목적으로 사용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2심) 등이다. 특히, 개인정보처리자의 분실·도난·유출·위조·변조 등에 대해 법정 손해배상을 물을 수 있는 39조2에 대해서도 해당 조항이 유출사건 이후 시행(2015년 7월 24일)됐다는 이유로 적용되지 않는다고 봤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법원이 손해의 범위를 너무 좁게 잡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1심부터 원고 측 변호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지우 장성환 변호사는 “개인정보 침해 사실 자체로 불안감이 느껴지는 것도 손해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손해에는 ‘적극적 손해’와 ‘소극적 손해’, ‘정신적 손해’라는 게 있다. 흔히 얘기하는 위자료는 정신적 손해를 말한다”며 “문제는 위자료 유무와 책정을 판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손해의 개념이 애매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제 최종 판단은 대법원 몫으로 넘어가게 됐다. 지난달 24일 원고 중 일부(247명)가 상고장을 제출하면서다. 대법원은 1·2심 재판 과정을 검토해 문제가 없을 경우 판결을 확정한다. 장 변호사는 “분명히 문제가 있기 때문에, 대법원에서 명확히 (이 사건을) 쟁점화해서 뭐가 옳은지 따져볼 것”이라고 말했다.
[양원모 기자(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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