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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거대한 코로나가 알려준 작은 승리의 가치들
  |  입력 : 2020-06-26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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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절감...작은 승리들에 높은 가치 두기를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코로나로 인해 ‘시간성’이라는 개념을 배우고 있다.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정의라는 것들이, 영원하기는커녕 모래성처럼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게 이렇게까지 피부로 와 닿은 적이 있나 싶을 정도다. 나 죽은 뒤에도 영원히 남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손에 벼려지고 빚어지고 기념되기를 기대했었는데, 나처럼 죽어 소멸될 것에 뭐 그리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진을 쏟았나 싶은 허무함까지 들었다.

[이미지 = utoimage]


제일 먼저 이런 생각을 가져다 준 것은 코로나 시대의 ‘안전’이라는 개념이다. 보안에 대해 알리는 나팔수 중 하나인 기자에게 ‘안전’은 영원성을 의심하지 못할 만큼 절대적 진리였다. 안전은 영원토록 소중한 것이고, 보다 안전한 시대와 미래를 만들어 가는 데에 한 획만큼의 일조라도 한다는 게 이 일의 보람이었다. 물론 사람마다 ‘안전’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조금씩 다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아예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안전의 절대성을 믿었기에, 조율과 충돌의 과정은 오히려 즐거웠다.

더는 아니다. 안전이라는 개념도 시간성 - 영원성이 아니라 - 에 종속되었다는 게 확인되면서 할 말을 잃었다. 나팔수가 큰 소리로 나팔을 불지 못하게 되었다. 시시각각 퍼지는 코로나를 추적하는 것, 즉 현재의 안전을 도모한다고 하는 노력이, 우리도 모르게 사생활을 노출시키는 결과, 즉 미래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과 맞물리는 것을 보며 갈 길을 잃었다. 공공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아마도 타인의) 사생활 쯤 노출시켜도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이 알게 모르게 퍼져가는 것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재택 근무를 하고 있어 아이들이 24시간 눈에 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지금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가 위협받는 걸 방치하고 있는 걸까? 아니지. 지금 이 질병에서부터 목숨을 보전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는 거잖아. 하지만 사생활이란 것이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언제고 침해될 수 있다는 개념 아래 살아갈 미래에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이 핑퐁 시합의 최종 점수는 ‘안전은 절대적이지도, 영원하지도 않은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그 동안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의심 없이 웹 페이지에 담았던 안전에 관한 메시지들에 대한 회의가 제일 먼저 찾아들었다.

질병 확산 상황을 모니터링 하는 게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프라이버시가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개념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코로나라는 거대한 재앙에 맞서 인간의 모든 선의와 지혜를 쏟아 부었지만, 오히려 안개 짙은 갈림길에 서게 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답을 찾는다고 해도 결국 먼 길을 돌아갈 뿐, 또 다시 뭔가를 선택하고 한쪽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에 반복해 놓이게 되는 인간 본연의 한계가 일종의 패배주의가 되어 기자 안으로 파고들었다. ‘번아웃’ 증상이 찾아왔다. 이겨도 지는 싸움을 우린 얼마나 더 되풀이해야 하는 걸까. 역사는 처음부터 심하게 패배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부끄럽게도, 보안 담당자들이 숱하게 하소연 해왔던 ‘기울어진 운동장’의 상황이 처음으로 내 이야기가 되었다. 코로나에 감사할 일이다. 보안 전문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을 방비한다고 하지만, 딱 한 번만 성공하면 되는 해커들의 승리 조건은 너무나 불공평하다. 이러한 상황이 코로나 전에는 형평성의 맥락에서 어렴풋이 짐작되었다면, 코로나를 겪다보니 보안 담당자들 안에 축적되고 있을지 모르는 패배의 쓴맛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난리인 요 몇 개월 잘 지내고 계시는지가 아니라, 도대체 이렇게까지 패배가 일상인 곳에서 여러분들 어떻게 마음 추스르고 매일 출근하시는가 묻고 싶었다.

패배를 감당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취미 생활에 집중하거나 술로 풀거나, 아니면 업종을 바꾸고 이직을 하거나. 그러나 이는 잘 해봐야 ‘감당’이다. 보안에서 말하는 완화(mitigation) 정도가 될 뿐, 패치를 통한 ‘해결’은 아니다. 간밤에 어떤 해커들이 침투를 시도했는데 전혀 뚫지 못하고 방화벽 언저리에서만 맴돌다 갔다는 흔적이 발견된다면, 이는 충분히 승전보가 될 만하다. 개선장군이 되어 입성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모양의 승리이겠지만, 스스로에게 ‘잘했어, 넌 오늘 이긴 거야’라고 말해줄 만한 비밀스러운 기쁨은 되고도 남는다.

결국 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패배주의라는 취약점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승리라는 패치를 자꾸만 해주어야 한다. 대단한 성과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것에만 의미를 둔다면 이미 숱하게 거두고 있는 작은 승리들이 빛을 잃는다. 조직마다 상황이 다르겠지만, 이미 해킹 시도에 노출되지 않은 곳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고 한다. 조금 규모가 크고 유명한 곳은 하루에도 수천 번에서 수만 번의 침투 시도를 겪는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이게 다 무슨 소리인가. 어쩌다 한 번 뚫려서 대서특필 될 수 있긴 하지만, 그러기 전에 하루에도 수만 번씩 이기고 있다는 뜻이다. 거꾸로 말해 한 번만 뚫으면 이기게 되는 해커들의 입장은, 수많은 패배를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 누가 패배주의에 물들어야 하는가?

그런 의미에서 요즘 ‘보안이 사업 경영의 조력자(business enabler)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도 조금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경영의 일선에 서게 되었다고 섣부르게 인식하는 순간 가시적 성과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 기대치에 연연하다가 이미 수만 번씩 쟁취하고 있는 은밀한 승리들이 의미를 누리지 못하게 된다. 사소해 보이는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할 줄 알고, 그래서 튼튼하게 장성한 ‘멘탈’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 먼저다.

코로나를 계기로, 보안 업계에 좀 더 이 은밀한 승리들을 자축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를 바란다. 이 글의 처음에 적은 것처럼 기자 본인도 적잖이 절망하긴 했지만 코로나를 추적하는 것도 중요하고, 사생활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는 것 자체가 승리의 시작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처음부터 완벽한 해결책을 내놓는 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역사 안에 종속된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일이니까. 이런 고민들이 집약되고 축적되어야 현재의 안전과 미래의 안전을 동시에 도모할 가능성이라도 희망할 수 있으니까. 혹 우리의 지혜가 모자라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지레 질러버린 결딴이 아니라 충분한 고민을 통해 내린 결단이라면 우리 몫을 충분히 책임진 것일 게다.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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