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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아버지의 보안 : 톱다운 방식과 제로트러스트
  |  입력 : 2020-10-2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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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보안 개념을 접하다 보면 생각나는 엉뚱한 기억들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어렸을 때의 일이다. 아버지께서 금은방을 여셨다. 보석은커녕 장사의 장자도 모르시는 분이 사업을 하도록 내몰리셨을 정도로 가정 경제가 심각한 상황에 처했다는 위기감보다 더 피부로 와 닿았던 건 갑자기 집구석에 생긴 흉측하도록 검고 커다란 금고의 존재감이었다. 의도적으로 잡동사니 속에 파묻으셨던 이 은밀한 비밀로부터 아버지의 새로운 가르침이 시작됐었다.

[이미지 = utoimage]


70년대에 지어진 낡고 작은 아파트였다. 화장실마다 환풍기가 아니라 환풍구가 뚫려 있었고, 그 구멍을 통해 우연히 동시간대에 변기에 앉은 이웃집 녀석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가끔 나오던 쥐꼬리에 비명을 지르곤 했었다. 그런 낡은 집에 그 금고는 너무나 이질적인 존재였다. 무서웠다. 어쩌면 그것에 관한 모든 것을 철저하게 비밀로 하셨던 아버지의 철저함이 더 낯설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금고 비밀번호를 절대 알려주지 않으셨고 아버지를 제외한 우리들은 그 안에 뭐가 들어 있었는지 아직까지도 모르고 있다.

아버지는 철저하셨다. 우리가 바깥에서 금고의 존재를 발설할까봐 몇 번씩 ‘누구한테도 말하지 말라’는 걸 강조하셨다. 실수로라도 금고를 언급한다는 것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요즘 보안 분야에서 대두되고 있는 제로트러스트의 개념을 우린 그 때부터 몸으로 익혔다. 온프레미스의 자산. 감쪽같은 비밀. 차라리 궁금해 하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됐고, 실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금고가 털리는 것보다 가게 망한 것이 빨랐다. 가끔 집 전화와 연결된 가게 비상벨이 울리면 자다가도 온 식구가 달려 나가는 일이 사라졌다는 것이 기뻤던 어린 마음은 그 금고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느 시점에 정리 되었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했고,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당연하지만 그 때의 그 보석들이란 것의 행방도 모른다.

톱다운 방식으로 퍼지는 보안 문화
그래도 남은 것이 있다. 가장의 금고가 집안에 있다는 사실은, 각자의 소중한 물건들을 집안 어딘가에 꽁꽁 감춰두는 문화를 만들어 냈다. 당시 라디오에 나오는 노래를 녹음해 나만의 앨범을 만드는 것에 심취해 있던 나는 아버지의 커다란 책상 밑에 테이프들을 숨겨 두었고, 동생은 방문에 연필을 꽂아두고 외출해 누군가 자기 방에 허락 없이 들어왔는지 여부를 꼭꼭 확인하곤 했다. 의심의 대상은 항상 나였다. 어머니도 잔돈 모으셨던 지갑들을 옷장 구석에 넣어두셨다.

그 어머니의 아지트를 알아낸 후 나는 어머니의 보안 위협이 되었다. 공테이프를 공수하랴, 가끔 친구들과 오락실에서 만나려면 동전들이 좀 필요했던 나는 악성 내부자가 되어 어머니의 돈에 손을 댔다. 나름 치밀하게 어머니를 관찰하고 동선과 예상되는 자금 상황에 따라 도둑질을 했는데, 그래봐야 애였던지라 금방 들켜 호된 매를 맞게 되었다. 이 부끄러운 과거 때문에 나는 아무도 믿지 않았던 장사 초보 아버지의 판단이 옳았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제로트러스트
지금까지도 난 ‘아무도 안 믿는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특히 병원 가는 일에 있어서 이 말을 자주, 반복적으로 내뱉는다. 올 여름 물난리를 겪어 침수된 집과 동네를 주말마다 복구하는 중인데, 평생 타자만 치던 사람이 갑자기 몸을 쓰려니 탈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아내는 유명한 침집을 알아봐주었다. “난 한의학을 잘 못 믿어.” 아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근처에 있는 제통 병원에 가보자고 했다. “그 선생님, 소문을 듣자하니 과도하게 친절해서 믿음이 안 가.” 학을 뗀 아내가 결국 귀를 잡아끌었다. 침도 맞고 주사도 맞았다.

사실 한의학에 대한 불신이라든가 지나친 친절함에 대한 불신은 제대로 된 제로트러스트가 아니었다. 그냥 병원에 가기 귀찮았던 자가 둘러댄 인터넷 밈에 불과했다. 하지만 직접 맞고 보니 나쁘지 않았다. 즉효는 없었지만 차도가 있었다. 확인이 되었고, 난 그 후로 두 병원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의학의 힘을 누리게 되었다. ‘믿지 말라’가 아니라 ‘확인을 게을리 하지 말라’라는 게 진짜 제로트러스트라는 걸 불혹을 넘겨 육체노동을 하고 나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그 때 아버지는 우리의 무엇을 부지런히 확인한 후 비밀번호를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으리라는 결론을 내리신 걸까? ‘가족도 못 믿으셨나’가 아니라 ‘어떻게 그 믿음직스럽지 못함을 간파하셨을까’가 궁금해졌다. 하긴 그러고 보면 나도 아이들에게 “아빠가 너에 대해 모르는 게 뭐가 있을 거 같아?”라고 묻곤 한다. 그 말은 진심이다. 그리고 나 같아도 아이들에게 금고 번호를 숨겼을 것이다. 못 믿어서라기보다 어리기 때문에 확인이 다 안 된 부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 때 아버지의 제로트러스트는 불신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부지런한 확인의 과정이 미완성의 시점을 지나고 있었기 때문에 나온 중간 결론이었을 것이다.

그럼, 지금 그 금고가 있다면 알려주셨을까? 아버지? 왜 답을 못하셔?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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