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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IT 전문가들의 전쟁과 리질리언스 이야기

입력 : 2022-04-1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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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개시 후 한 달이 넘은 시점, 우크라이나의 IT 업계는 어느 정도 정상 궤도에 올라섰다. 여러 가지 국제적 지원이 있기도 했지만 이미 우크라이나 IT 기업들이 비상 상황에 대한 대처 시나리오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코로나로 인한 재택 근무 체제도 전화위복과 같은 것이 되고 있다.

[보안뉴스 문정후 기자] 대다수 우크라이나인들이 그렇듯 우크라이나 IT 업계에서 근무하던 28만 5천여 명의 사람들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과 폭력적인 공격 행위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놀란 상태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곧바로 일어서서 자기의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친구와 가족과 이웃이 무사한지 확인하고, 돕고, 회사의 사업 행위가 전쟁 중에도 지속될 수 있도록 방법을 찾는 것이 그들의 할 일이었다. 우크라이나 경제에서 IT 분야가 세 번째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에 전쟁 중에도 회사들은 계속해서 수익을 내야만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모아 보았다.

[이미지 = utoimage]


사업 지속성 계획, 도움이 되다
우크라이나의 기술 자문 조직인 르비브 IT 클러스터(Lviv IT Cluster)의 의장 이반 바비추크(Ivan Babichuk)는 “이미 대다수 우크라이나 기업들은 사업 연속성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상태였다”고 말한다. “그래서 전쟁이 터졌어도 대다수 기업들은 뭘 해야할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대다수 직원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는 작업 정도는 이틀 정도만에 다 완료됐죠.”

대다수 IT 직원들과 그 가족들은 그 이틀 안에 르비브로 거처를 옮겼다. 르비브는 우크라이나에서 두 번째로 큰 IT 허브였을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서부에 있었기 때문에 전쟁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곳이었다. 그 외에 피난민들 사이에 섞여 이웃 나라로 대피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 때 기업들은 피난민을 실어 나르기 위해 트럭을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사람들을 직원들과 연결해 주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기술 분야 리테일러인 테노에즈(Tehnoezh)의 CMO인 닉 칸코(Nick Khanko)는 친구 가족이 슬로바키아로 피신하는 걸 돕기 위해 3일을 같이 여행길에 올랐다고 한다. “친구 가족을 태우고 3일을 운전해서 국경선까지 갔어요. 그리고 슬로바키아로 무사히 넘어가는 걸 확인했고요. 그리고 아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 때 실감이 확 들더군요. 저와 아내는 불과 수일 전에 스튜디오를 하나 차렸던 상황이었거든요. 그걸 다 버려두고 저희도 어디론가 피신을 해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죠. 돌아오는 길에 저희 둘은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실의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마을로 돌아오니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참호를 파고, 탱크 진입을 막기 위한 장치들을 설치하는 일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전쟁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운동을 그런 작업들로 대신했죠.” 낮에는 그런 ‘운동’을 하고서 밤에 돌아온 칸코에게 밤은 또 다른 전쟁터였다. 디지털 공간에서 두 곳의 NGO들과 함께 전쟁 지원 물자를 계속해서 공급하는 일을 기획하고 또 실행에 옮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IT 기업인 큐에어리어(QArea)와 테스트포트(TestFort)의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아나스타시아 조홀라(Anastasiia Dzhohola)는 “큐에어리어와 테스트포트의 경우 직원들을 위한 대피처 제공 규정을 마련해 시행했다”고 말한다. “다른 나라로 가고자 하지 않았던 직원들이 있었고, 그런 경우 이 두 기업은 우크라이나 내 다른 지역으로 직원들이 대피하도록 했습니다.” 큐에어리어와 테스트포트는 키이우, 하르키우, 체르카시 지역에 사무소를 마련하고 있던 회사였다. 전부 러시아의 맹공을 받은 지역들이었다. 그래서 그 지역 직원들을 다른 곳으로 대피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현재는 90%의 직원들이 비교적 안전한 곳에 있습니다.” 조홀라의 설명이다.

멀리서 지원하기
조홀라는 전쟁이 발발했을 때 마침 스페인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우크라이나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현재는 원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국가를 위한 일이라고 여기고 있기도 하다. “지금은 무사한 것 자체가 국가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에 있는 저의 동료들과 가족들을 여기서 최대한 지원하고 돕는 것이 저의 역할이죠.” 이런 생각으로 해외에서 활동을 하는 인력들은 생각보다 많다. 지난 10년 동안 우크라이나의 IT 인재들은 꾸준히 해외로 유출됐는데 이 디아스포라들이 현재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조홀라는 해외에서 자리를 잡은 디아스포라들과 달리 얼른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 한다.

이렇게 기업별로 혹은 개인별로 현재의 비상 사태에 적응하려 하기도 하지만 산업 전체가 국가를 지원하기 위해 움직이기도 한다. 체르니시(Chernysh)라는 한 기자는 “전쟁이 터지자마자 매체들 전부 국민들의 생존을 위한 정보를 전파하는 데에 주력하기로 결정했다”며 “4백만 독자들이 가장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곳을 알아내고, 피난을 통해 생존하고 삶의 새로운 터전을 찾은 이들의 이야기를 싣는 방향으로 언론 전체가 움직이기로 했다”고 설명한다. IT 우크라이나협회(IT Ukraine Association)의 회장 콘스탄틴 바숙(Constantin Vasuk)은 “전쟁 개시 후 10일 안에 2400만 달러를 모금하는 데 성공했고, 이를 우크라이나 군에 전달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의 IT 업계는 처음부터 전쟁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 활동에 전념했었습니다.”

포화 속에서도 사무실로
초기의 충격이 가시기 시작하고 본격적인 대응과 지원이 진행되면서 IT 근무자들이 슬슬 회사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이 역시 IT 산업 내 기업들이 사업 연속성에 대한 계획을 탄탄히 보유하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시그마 소프트웨어 그룹(Sigma Software Group)의 부회장 알렉시 사이로튝(Alexey Syrotyuk)은 “이처럼 빠르게 근무자들이 업무로 복귀한 산업은 IT 외에 거의 없다”고 말한다. “직원들을 많이 거느린 대기업들의 경우에도 1~2주 만에 다시 가동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스타트업과 경력직 엔지니어들을 연결시켜주는 회사인 레몬아이오(Lemon.io)의 마케팅 책임자인 한나 자수카(Hanna Zasukha)는 “러시아의 침공은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미국의 첩보를 참고했고, 러시아가 들어올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쟁 상황 발생시 해야 할 일들을 미리 계획해 두었고, 실제 전쟁이 터지자 그 계획들을 그대로 실행했습니다. 특히 전쟁이 발생하면 직원들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 것인지를 예상하고 모든 시나리오에 대한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르비브의 IT 클러스터인 바비츄크(Babichuk)는 “전쟁 발생시 대응책은 우크라이나 거의 모든 기업들이 마련해 두고 있었다”고 말한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리미아를 침공한 이후 이런 정도의 준비는 어느 조직이나 하고 있었다는 것이 바비츄크 측의 설명이다. “그런 준비 덕분에 현재 우크라이나의 IT 업계는 꽤나 놀라울 정도의 대응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자수카는 “폭탄이 매일처럼 투하된 것이 벌써 한 달 넘게 지속되고 있다”며 “공습 경보와 피난처 물색이라는 게 새로운 현실이 되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회사 메신저 서비스를 통해 자기 지역에 공습이 시작됐다는 걸 빠르게 알리고, 그러면서 미리 업무나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을 것에 대한 양해를 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대피소에 들어가서 자신의 업무를 보는 경우들도 있고, 그럴 때는 그러한 사실을 공유해 모두가 업무 속도를 맞출 수 있게 합니다. 전쟁 전보다 훨씬 소통을 많이 하고 있으며, 그러면서 서로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분위기가 저절로 연출됐습니다. 이렇게나 서로 뭉칠 수 있다는 것과, 그랬을 때 할 수 있는 일과 대응력이 크게 높아진다는 사실에 저희 모두 놀라고 있습니다.”

원격 근무가 주는 이익
IT 근무자들이 진작부터 원격 근무를 하고 있었다는 것도 이번 전쟁에 굉장히 유리하게 작용했다. IT 인프라와 기술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한 원격 근무 활성화를 통해 조금씩 소규모 도시들에도 IT 인프라가 고루 마련되기 시작했고, 이것이 전쟁 중에서도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IT 관련 임무를 수행하는 걸 가능하게 만들었다. 러시아가 주요 대도시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면서 이러한 환경의 장점은 특히나 빛을 발했다. 사이로튝은 “고향으로 돌아오는 IT 전문가들이 늘어났고, 그런 전문가들 덕분에 현재 우크라이나 IT 업계는 사업 중단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상태가 됐다”고 말한다.

바숙 역시 “코로나 때 IT 업계가 원격 근무 체제로 빠르게 전환하기 위해 움직인 것이 이렇게 큰 보상으로 되돌아오고 있다”는 의견이다. “IT가 원격 근무 체제를 적극 지원했고, 그것이 굉장히 유효했음이 전쟁을 통해 증명되었으니 앞으로 세계 시장에서도 우크라이나 기업들은 유연한 근무 체제를 통한 경쟁력을 고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IT 업계 스스로도 앞으로 다른 기업들의 어떤 부분을 지원해야 할지 갈피를 찾은 느낌이고요.”

하지만 아무리 유연하게 대처한다고 해도 전쟁은 전쟁이다. 전 직원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무실로 복귀하거나 집에서 재택 근무를 진행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분명히 회사 업무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큐에어리어와 테스트포트, 레몬아이오의 경우 적잖은 인력들이 군인이 되어 전쟁에 직접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경우 기업들은 군 복무로 자리를 비운 인력들에게 봉급을 그대로 준다고 한다. 그래야 멀리 나가 있어도 가족들의 생활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이런 식으로도 전쟁을 지원할 수 있다는 생각이 IT 전문가들 사이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더 많이 벌려고 노력합니다. 더 많이 벌어서 전쟁터에 나가 있는 동료들과 그 가족들을 더 많이 지원하고자 하는 것이죠.”

조홀라는 “전쟁이라는 새로운 현실 속에서 IT 분야가 우크라이나 경제의 새로운 주축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단순히 IT 분야가 가진 잠재력만으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건 아닙니다. 현재 IT 분야가 보여주고 있는 깊이 있고 빠른 대응이 국민들과 국가 전체에 신뢰감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어려움들
많은 IT 전문가들이 어떻게든 일할 곳과 시간을 찾아 기업과 산업을 - 그리고 더 나아가 국가를 - 지탱하고 있지만, 아직도 생명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칸코는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바로 옆에서 폭탄이 터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일해야 한다는 건 꽤나 큰 어려움”이라고 설명한다. “혹은 좁은 방 하나에 대여섯 명이 다리도 못 펴고 앉아 있는 가운데 일을 해야 하기도 하고요.”

또한 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서부 지역으로 임직원들을 이주시키는 것도 임시방편이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쟁으로부터 좀 떨어져 있는 지역이긴 하지만, 지역이 가진 자원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갑자기 모든 사람이 쓸 수 있는 자원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죠. 그리로 피신을 갔다 하더라도 그 다음이 더 문제인 겁니다. 이건 IT의 힘 만으로 해결하기가 힘들죠. 그래도 다행인 건 끊어졌던 인터넷 망이 비교적 빠르게 복구됐다는 겁니다. 이건 스타링크(Starlink)가 발빠르게 지원을 해주었기 때문에고, 그에 대해 우크라이나 IT 업계는 마음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빠른 인터넷 복구가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아직 많다. 러시아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던 경우나 급하게 거주지를 옮겨야 해서 자리를 못 잡은 사람들이 그렇다. 피난민들에게 직업을 소개시켜주려는 서비스가 개설되고 활성화되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원활하게 직장을 잡는 건 아니다. “수일에서 수주 만에 새로운 기술을 익혀 직장을 가지기는 현실적으로 힘듭니다. IT 프로젝트는 갈수록 복잡하고 난이도가 높아지고 있기도 하고요.”

게임 디자이너 형제였던 드미트로 할리트신(Dmytro Halitsyn)과 올렉산드르 할리트신(Okeksandr Halitsyn)은 피난길을 떠나온 뒤 새로운 직장을 아직 못 잡고 있다. 게임 디자인 경력이 아직까지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원래 저는 러시아 개발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되고 저는 회사 직원들 단체 채팅 방에서 추방됐습니다. 제가 동료들에게 ‘러시아는 왜 자꾸 북한이 되려고 하는가, 도와달라’라고 물었을 때도 그들은 별로 공감하지 못했어요. 오히려 회사에서 정치색을 강하게 보인다고만 생각하더군요.” 칸코도 러시아인 동료나 파트너사들이 이번 사태에 대해 그렇게 큰 감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에 놀란 적이 있다고 동의한다.

하지만 국제 사회는 우크라이나에 좀 더 우호적이다. 수많은 기업들이 러시아 기업들과의 계약을 취소하고 있으며, 취소한 계약 건을 우크라이나 기업들에 제시하기도 한다. 바숙은 이러한 움직임에 감사하면서, “더 많은 기업들이 여기에 동참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한다. “많은 우크라이나 IT 기업들이 전쟁 전과 비슷한 수준의 생산량을 맞추고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희와 계약을 맺는다고 해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바비추크 역시 여기에 목소리를 함께 내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부담 없이 돕고 싶다면 우크라이나 IT 업계와 협업을 해 주세요. 저희는 지금도 그렇고 미래의 우크라이나 경제에 막대한 위치를 차지할 산업입니다. 저희를 지원하는 건 우크라이나 군을 지원하는 것과 같고, 따라서 러시아를 점점 더 어렵게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글 : 리차드 팔라디(Richard Pallardy), 베라 체르니시(Vera Chernysh), 파벨 벨라빈(Pavel Belavin)
[국제부 문정후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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