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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영화] 목소리만 컸지 사실은 휘둘리는 ‘오토라는 남자’

입력 : 2024-04-1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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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매사에 이기는 것 같지만 사실은 조용한 영향력에 휘둘렸던 할아버지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그것이 원작자나 감독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오토라는 남자’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을 때 머릿속에 남는 건 ‘휘둘리면 지는 거다’였다. 매사 딱딱하고 공격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강경론자 오토는 사실 주변 상황에 있는 대로 휘둘리고 있었고,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해 의견이라는 것 자체가 없어 보이는 이웃집 남자와 그의 조금은 더 똑부러지는 아내는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오토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미지=넷플릭스]


누군가에게 휘둘린다는 건 그 누군가의 부탁과 요청, 명령을 거절 못하고 계속해서 들어주는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거절을 해도 끈질기게 치고 들어오는 요청 앞에 주인공 오토처럼 오만상 찌푸리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도 사실은 휘둘리는 것이고, 더 나아가 주변 상황에 따라 감정이 요동치는 것조차도 휘둘리는 것이다. 오토가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마을을 엉망으로 관리한다고 일일이 쫓아가 심한 말로 화를 내 점점 고립되고,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고 번번이 자살을 시도하는 것도 ‘휘둘린다’의 범주 안에 있다는 뜻이다. 나의 분노, 나의 슬픔을 내 마음대로 발산하는 것이니 휘둘리는 게 아닌 걸까? 그것이 정말 나의 것이라면 나를 관계의 파멸, 생명의 파멸로 이끌어갈 리가 없다.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휘둘린 것이다.

‘나의 것’이란 무엇인가? 내가 마음대로 소비할 수 있는 것일까? 맞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내 마음대로 거둬들이고 내보내고, 내 마음대로 사용했다가 사용을 중단할 수 있는 것이어야 내 것이다. 소비를 넘어, 내가 제어할 수 있는 것이 ‘나의 것’이라는 소리다. 그런 논리로, 감정이 나의 것이 되려면 제어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의지가 아니라 주변 상황 때문에 감정이 생겨난다면, 그 감정은 나로부터 나왔지만 내 것이 아니다. 세상 부조리를 보고 자동으로 격해지는 사람들, 슬픔이나 두려움에서 도무지 벗어나지 못해 일상과 관계를 파괴하기에 이른 사람들 - 우리 주변에 흔하다 - 모두 자기 것이 아닌 감정을 자기 것인냥 고이 품고 있다가 안타까운 자멸의 길로 가는 것이다.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건 때론 생명과 파멸을 구분 짓기도 한다.

오토의 슬픔과 분노에 시청자들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내가 가꿔왔던 마을이 다른 모습으로 관리되는 것에 화가 날 법하고, 평생을 사랑했던 아내의 죽음에 삶의 이유를 죄다 잃는 것도 그럴 법하다. 하지만 오토가 그런 감정들을 제어하려고 시도하는 모습은 영화 속에서 한 번도 비춰지지 않았고, 그의 감정은 항상 현상이 나타남에 따라 즉발했다. 즉 우리가 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느냐 없느냐와 별개로, 그가 자기 감정을 소비하는 모든 경우에서 ‘그는 자기 감정을 소유하고 있지 못하다’는 걸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멸을 계속해서 시도한다. 내 것이 아닌 걸 마구 쓰고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게 된 이들의 말로와 비슷하다.

반대로 그의 큰 목소리에 주눅들고 쩔쩔 매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자기 할 말 다하고,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는 옆집 부부는, 자신들의 감정을 꽤나 잘 다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토가 모욕적인 말을 해도 ‘그러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심지어 ‘미안해요’라고 악감정 섞이지 않은 반응을 보이니, 오토의 감정은 튕겨나오고, 따라서 말싸움에서 지는 것 같아도 오히려 강해 보인다. 아니, 말싸움이라는 게 성립되지 않는다. 큰 목소리의 오토가 오히려 자기도 모르게 그들의 차를 대신 주차하고, 그들을 병원에 데려다주며, 아이들을 돌봐주고, 결국에는 그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이미지=넷플릭스]


목소리 크면 이긴다고 하는데, 우리가 스포츠 경기장 위에 서서 심판들의 주목을 받아가며 사는 게 아닌 이상 승리 같은 패배와 패배 같은 승리는 곳곳에 있을 수밖에 없다. 살다 보면 그 끝에 가서는 단 맛 가득한 패배도 있고, 쓴 맛 투성이의 승리가 있음도 경험하게 된다. 무엇이든 직관적인 것에만 의지해서는 그 뒤편에 예비되어 있는 것들을 놓치게 되는데, 그것만큼 큰 손실이 없다. 당장의 승리처럼 보이는 것들에 집착하는 건 아이들의 특성이다. 가게에 갔는데 사고 싶었던 빵이 없을 때 속상해서 우는 아이들 말이다. 녀석들은 그 가게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똑같은 빵을 더 만들 수 있다는 걸 모른다. 그러니 당장의 슬픔과 속상함에 지배를 당한다. 지배를 당하기에, 내 목청과 내 눈으로 울지만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해커들은 늘 이기는 것처럼 보이고, 보안은 늘 지는 것처럼 보이는 게 이쪽 업계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먼저, 해커는 목소리가 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들은 자신들의 성과를 자랑하고 싶어 안달인 부류들이다. 매체들도 사고 소식을 앞다투어 퍼나른다. 방어에 성공한 경우는 조용하다. 실제 창과 방패의 대결이라면 마찰음이라도 크게 났을 테지만, 여기는 사이버 공간이다. 전기와 전기, 0과 1이 아무리 부딪혀도 소름끼치게 조용하다. 그러면서 승리의 함성도 묻힌다. 함성이 없으니 승리가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오감으로 느껴지는 것은 없고 승리의 본질만 남는데, 그래서 그런지 심심하다.

해커들이 원하는 것을 자기들 뜻대로 가져가는 것은 승리일까? 남의 돈으로 부자가 돼 고급 차도 사고 럭셔리한 휴양지에도 들락날락 하는 그것이 승자의 삶일까? 당장은 그래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찾아서 잡아내는 방어자들의 실력은 소리 소문 없이 발전하고 있다. 공격자들이 피해를 크게 입힐 때마다 국제 공조와 역해킹, 추적을 가로막는 여러 가지 장벽들이 빠르게 사라진다. 실제로 10년 전만 해도 국제 공조의 현실적 어려움이 토로되고, 갈 길이 한참 멀었다는 소리가 가득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에 비해 작전들이 수월하게 진행된다.

한 번의 조용한 방어 경험이 누적되고, 한 번의 공격 허용 경험이 누적되고, 우리는 좀 더 다채로운 방안들을 마련하고 실험하고 결국 더 튼튼해진다. 해커들은? 매번 똑같은 거 한다. 피싱이나 소셜 엔지니어링의 단순 반복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생각만큼 화려하지도 재미나지도 스릴 넘치지도 섹시하지도 않다. 방탕만 있고 성장은 없다. 취약점 공략이라는 것도 보안 전문가들의 개념 증명 연구에서 따가는 게 많고, 수년째 가장 많이 사용되는 해킹 도구는 사실 보안 업계가 개발한 레드팀용 솔루션이다. 이게 승리?

방어자는 애초부터 공격자를 앞서갈 수 없다. 공격이 있어야 방어를 하지, 방어벽이 단단히 세워져 있는 곳에 주먹을 내지르는 건 바보다. 공격자는 한 발 앞설 수밖에 없는 게 공방의 태생적인 구조이면서 순서다. 그런 당연한 서사에서 공격자가 한 발 앞서 간다고 자랑하는 것은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다. 40세 중년이 아침마다 출근하면서 걸음마 성공했다고 자축하는 것과 같다. 반면 공격자의 바로 뒤에서 한 걸음 간격을 유지하는 건 대단한 성과다. 시작을 먼저한 자가 휑하니 앞서가지 못하게 같은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건 앞선 자보다 뒤에서 출발했을 뿐 실력은 최소 대등하다는 뜻이 된다. 한 걸음의 차이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승리다. 다만 한 걸음이라도 앞선 자가 이긴 것처럼 보일 뿐이다. 사이버 공간이 지독히 조용할 뿐이다.

[이미지=넷플릭스]


눈에 보이는 것이 중요하긴 하다. 패배가 아님에도 패배처럼 보이니, 낙담이라는 게 찾아오고 번아웃이 가속된다. 본질만 남은 승리는 감춰지고, 감정이라는 것이 스멀스멀 보안 전문가들이 이뤄낸 것들을 지배하려 든다. 그 감정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왜 음침한 구석에서 한심한 반복 작업에 몰두하며 방탕의 길로만 바삐 달려가는 해커들이, 매일 승리하는 보안 전문가의 마음을 들쑤시도록 허용하는가? 이 질문을 떠올려야 한다. 저들이 승리한다면, 그건 바로 보안 전문가로서 내 승리를 가짜 감정에 퇴색되게 하는 데 성공할 때일 것이다.

감정을 나의 것으로서 지배하려면 해커들의 성과를 성과로 이해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빵 가게 진열대에 오늘 빵이 없다고 울어도 되는 시절은 지나갔다. 가게 뒤에서 행해지는 일들을 본 듯이 알아야 한다. 속상한 마음 접고 다음 날 다시 가게를 찾으면 그만이다. 해커들은 승리하는 게 아니라, 한 발 앞선 포지션에서 출발했으면서도 아직도 우리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다.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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