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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으로 이해하는 AI 보안-25] 인공지능, 에스토니아의 모범사례

  |  입력 : 2020-12-07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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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정부가 발표한 인공지능 전략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인공지능 국가전략의 아이콘으로 내세운 ‘크라트’, 전 국민이 동참하는 인공지능사회 구축


[보안뉴스= 김주원 사이버보안 분야 칼럼리스트] 팔레(Pile)는 그녀의 스마트폰 알람 소리에 잠이 깼다. 모닝커피를 즐기러 주방에 가니 그녀의 스마트폰에 내장된 가상 도우미인 헷지호그(Hedgehog, 고슴도치)가 아침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주인님! 주인님에게 10개의 메시지가 왔네요.”
“중요한 메시지가 있니?”

[이미지=utoimage]


팔레가 헷지호그에게 물었다.
“하나 있네요. 구청에서 안내문이 발송되었는데, 주인님의 여권이 6개월 후에 만료된다네요.”
“아직 기한이 좀 남았네. 헷지호그, 여권의 재갱신 만료일 한 달 전으로 갱신 일정을 맞춰줘.”
“알겠습니다. 그런데 지난주 주인님이 태국행 항공권을 구매했어요. 태국에 입국하려면 6개월 이상의 유효기간이 필요한 여권이 있어야 한답니다. 지금 새 여권을 신청하는 게 어떨까요?”
“그게 좋겠네, 그렇게 해주렴. 헷지호그.”
“넵, 지금 제가 구청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여권 신청을 할게요. 그런데 여권을 신청하려면 주인님의 개인정보가 필요하답니다. 주인님의 지문과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팔레는 스마트폰 센서에 그녀의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잠시 후 신호음이 들렸다.
“잘하셨어요. 다음으로 카메라를 바라보세요.”
팔레는 카메라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여권 사진으로 저장되어 전송되었다. 그런데 헷지호그는 잠시 기다리다가 이야기를 꺼냈다.
“구청에서 다른 사진을 요청하네요. 아마도 주인님이 사진을 찍을 때 웃지 않아서 그런 듯합니다. 다시 한 번 사진을 찍어야 할 것 같네요.”
팔레는 한 번 더 사진을 찍었고, 새로운 사진이 구청으로 전송됐다.
“다 되셨습니다. 여권은 집으로 일주일 내 발송된 답니다.”
헷지호그는 상황을 짧게 설명했다.
“우리의 디지털정부는 참으로 간결하고 쉽다는 말이지.”
팔레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아직 식지 않은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위 이야기는 2020년 2월 24일 에스토니아 정부가 발표한 인공지능 전략인 ‘디지털공공서비스의 차세대 비전과 구상 : KrattAI’의 첫 페이지에 수록된 내용이다. 에스토니아는 러시아 북서쪽에 있는 나라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스칸디나비아 3국의 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가 가장 추울 것 같지만, 발트 해 연안에 있는 에스토니아도 겨울나기가 만만치 않다. 필자가 에스토니아를 몇 차례 방문했었는데, 한겨울에 가면 오후 3시만 되도 주변이 깜깜해진다.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의 구도심에나 가야 사람 구경을 하지, 조금만 벗어나도 눈이 내리는 허허벌판을 바라보게 된다. 발트 해를 끼고 있으면서도 생선을 별로 먹지 않는지 연어 이외에는 싱싱한 물고기를 찾아보기 어렵고, 신선한 채소도 귀하다.

오랫동안 주변 강대국인 소련(현재 러시아)의 일부였다가,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인 1990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독립했다. 우리나라 경상남북도를 합친 정도의 국토이지만, 우랄-알타이어를 쓰는 언어 형태와 주변국으로부터 외침을 많이 받은 점 때문인지 민족성·행동 등이 우리와 비슷하다. 인구 150만 명밖에 되지 않지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그들을 보면 단결력과 추진력도 남다르다는 사실에 감탄하게 된다. 작은 나라이지만 자국에 대한 애국심은 우리나라 사람들 못지않다.

우리나라 국가명인 코리아(Korea)가 약어로는 KOR이듯이, 에스토니아(Estonia)는 EST로 표기한다. 그러다 보니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최상급 표현으로 해당 단어 뒤에 est를 붙이기를 좋아한다. 특히, 인터넷에 관해서 에스토니아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등장한다. 1996년 인터넷뱅킹 서비스 시작, 2000년 전자정부와 전자세금신고제도 확립, 2001년 광대역통신망 X-ROAD 구축, 2002년 디지털전자서명 실시, 2005년 전자선거 시행, 2007년 NATO 산하 사이버방호센터 설립, 2008년 블록체인 기술 도입과 헬스케어 운영, 2010년 전자처방제도 시행, 2014년 사이버영주권(e-Residency) 제도 시행, 2015년 해외 클라우드 대사관 설치 등을 수행했다. 2019년에는 정부 인공지능(AI) 전략도 발표했다. 모두 ‘에스토니아가 세계 최초’라고 자랑한다. 기술 개발과는 별개로, 2000년 에스토니아 의회는 인터넷 접근이 국민의 기본권이자 인권임을 선언하는 법률을 세계 최초로 제정했다.

우리는 인터넷을 기술적 측면으로 접근하는 데 반해, 서구권에서는 법·제도·윤리 부분도 함께 고려한다. 즉, 인간이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차별․통제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첫째, 누구나 인터넷으로 원하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이러한 환경에서 자신의 의견과 표현을 제한 없이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인간은 인터넷을 차별 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고,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사이버공간에서 자신의 주장을 피력할 수 있고, 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한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국가가 사이버공간에서도 누구나 보편적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기반 환경을 갖추어야 한다는 인식도 전제로 깔려있다.

에스토니아는 교통 사정이 열악한 나라다. 하지만 사이버공간에서만큼은 위와 같은 마인드에 따라 국민들에게 기본권·인권을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갖췄기에 이러한 국민적 합의를 토대로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을 갖춘 것이다. 에스토니아와 비교하여 한국은 어떨까? 우리는 한국이 세계 최고의 인터넷 운용·사용 국가이며, 많은 인터넷 관련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면에는 이러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계층도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은 공공재다. 비용 문제로 사이버공간에 접속하기를 포기하거나, 특정 정책 때문에 자신의 주장이 검열·제한 당할까봐 우려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안 된다. 물론 비방이나 욕설·명예훼손과 같은 사안은 걸러내야 하지만 말이다. 이러한 보편적 권리에 인공지능 기술이 접목되어야 더 높은 성장을 할 수 있다. 물론 법·제도·인식·교육 등이 뒷받침되어야 기술이 발전할 수 있다. 기술만으로 발전된 기계는 자칫 우리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에스토니아도 같은 생각을 한 것 같다. 좀 전에 언급한 에스토니아의 인공지능전략을 살펴보노라면 그들의 신화에 등장하는 크라트(Kratt)에 관심을 쏟게 된다. 크라트는 집에 있는 잡동사니와 건초더미로 만들어진 일종의 장난감 인형인데, 살아서 움직인다. 그리고 주인의 명령에 따라 끊임없이 일한다. 주인이 일을 시키지 않으면 오히려 악한 일을 하며, 심지어 주인을 죽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주인은 크라트가 생각할 여유를 갖지 않도록 계속 부려먹어야 한다. 크라트를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불가능한 작업을 제공하는 것이다. 크라트를 보노라면 인공지능의 속성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래서 에스토니아 정부는 인공지능 국가전략의 아이콘으로 크라트를 내세우고, 그에 따라 제정한 ‘크라트 법’으로 전 국민이 동참하는 인공지능사회를 구축하고 있다.

그런데 혹자는 ‘기술만 좋으면 되는 것 아닌가? 법률이 뭐 그렇게 중요하지?’라고 반문한다. 이와 관련해서 좋은 예가 있다. 에스토니아는 배달 드론과 로봇에 관한 법률을 제정·시행 중이다. 주요 내용은, ‘배달 드론과 로봇은 시속 6킬로미터의 속도로 인간 또는 보조 없이 이동할 수 있으며, 컨테이너에 소포·식료품·음식 등을 최대 10킬로그램까지 저장해 배달할 수 있다. 로봇이 이동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사람이 다니는 보도이다. 그리고 사고가 났을 경우를 대비해 책임보험과 사용자의 연락처 정보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에스토니아에서는 이와 같은 규제 샌드박스와 법 제도 덕분에 드론․로봇 관련 스타트업들이 성장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에스토니아의 스타십 테크놀로지스는 무인 배송 로봇의 상용화에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스카이프의 공동 창업자인 아티 헤인라와 야누스 프리스도 이 회사에 적극 투자했다. 이 회사가 선보인 무인 배송 로봇 ‘스타십’은 아이스박스처럼 생긴 몸체에 바퀴가 여섯 개 달렸다. 내부에 물건을 18킬로그램이나 담고서 목적지까지 나를 수 있다. 다양한 센서로 장애물을 피하고, GPS로 목적지를 찾아간다. 물론 사람의 제어가 필요할 때는 원격조종도 가능하다. 현재 스타십 테크놀로지스는 전 세계 배송 로봇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이렇듯 선제적 법률·제도는 기술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한국도 에스토니아와 비슷한 시기에 국가 인공지능전략을 발표했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나 스타트업들은 이에 관한 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 내용이 너무 추상적이고 선언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스토니아의 전략은 그야말로 마음에 와 닿는다. 바로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팔레와 헷지호그의 이야기에 에스토니아 정부가 생각하는 방향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정부가 인공지능 정책을 어떻게 가지고 갈 것인지를 쉽게 파악하고 있다.

예를 들어, 농민들이 보조금을 받는 과정에서의 공정성을 높이는 데에도 인공지능이 사용된다. 먼저 인공위성으로 경작 상황을 분석한다. 어떤 상황인지 잘 이해가 안 된다면, 한국의 경우를 떠올려보라. 농가가 수해·산불 피해를 봤을 때 지자체가 일일이 가정 방문을 해 피해 사실을 확인한 뒤 서류를 작성하고 신청서를 제출하는 번거로운 행정 절차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실사가 나오기 전까지 현장을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 언제 보상받을지도 막막하다. 하지만 에스토니아의 인공지능 이미지 분석 시스템은 위성사진을 판독해 재난지역을 확인하고, 재난지역의 농산물도 파악해 바로 피해를 산정한 후, 보상 절차에 들어간다. 정확도가 90퍼센트 이상이라니 업무의 효율성이 대단하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에스토니아 정부가 주최한 어느 해커톤 행사에서 나왔고, 그 아이디어가 채택된 후, 개발은 스타트업이 했다. 이러한 적극적인 아이디어 발굴과 스타트업 지원이 이루어지면서 에스토니아 국민은 취업보다 스타트업 창업을 선호하고 있다. 이러한 스타트업이 에스토니아에만 약 1,000개 이상 있으며, 에스토니아는 1인당 스타트업 수가 세계 최고다. 또한, 에스토니아에서는 구급대원이 사고 현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사고를 당한 개인의 의료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바로 육아수당 지급을 원하는지를 자동으로 묻는 알람이 울리고, 한 번 신청하면 부모는 아이가 성장할 때마다 다시 신청하기 위해 주민센터를 방문할 필요가 없다.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이렇듯 지금까지 구축된 시스템과 경험, 노하우를 바탕으로 디지털서비스를 계속 혁신·발전시키고 있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인공지능 산업을 육성하자고 외치기보다 인공지능 산업이 국민들 주변에 자연스럽게 동화되게끔 하고 있다. 사실, 구호만으로 인공지능 시대가 오는 건 아니다. 뇌는 물론 눈·코·입, 그리고 오장육부 모두가 제 기능을 해야 건강한 인간이 되듯이, 인공지능도 모든 분야와 잘 융합되어야 인공지능 시대를 열 수 있을 정도로 제대로 동작할 수 있다.

솔직히 필자는 에스토니아의 탈린 공항에 처음 도착했을 때만 해도 에스토니아는 자원도 부족하고, 국토도 인구도 작기에 우리와는 상대가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은 나라가 강대국을 이기는 전쟁도 있지 않은가. 이에 대해 ‘순전히 운이 좋았다’거나 ‘강대국이 방심해서’라고 하는 것은 작은 나라에 대한 모독이다. 작은 나라의 사람들도 이기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해가며 방법과 대책을 마련했을 것이다. 에스토니아가 그러했다. 에스토니아에서는 초등학교에서 코딩 수업을 진행하고, 사이버보안 민병대도 조직·운영하고 있다. 작은 나라라고 비웃다가는 다칠 수 있다. 우리가 에스토니아에서 배울 점이 너무나 많다. 에스토니아 사람들이 추진하고 지향하는 바를 명확히 이해하고, 그들의 장점을 취한다면 우리도 인공지능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글_ 김주원 사이버보안 분야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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