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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모든 죽음에는 애도의 방법이 따로 있다

  |  입력 : 2022-09-18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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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자들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게 맞긴 한데, 그 싸움의 위치 자체를 바꿀 수는 없을까?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요 한 주 외신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죽음과 관련된 소식으로 도배되어 있다시피 하다. 이런 시대에도 군주의 죽음이 이렇게까지 긴(시간과 공간 모든 측면에서) 추모의 행렬과 지칠줄 모르는 활자광들의 필력을 불러일으키니 경이롭기까지 하다. 세상에, Long Live the Queen이라는 문장이 더 이상 관용구처럼 사용되지 않을 거라니. 아니, Long Live the King으로 대체된다니. 옛 영어에 익숙한 혀가 벌써부터 꼬인다. 이런 떠들썩한 죽음의 변주들마저 역사에 고스란히 기록될 터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이니까.

[이미지 = utoimage]


2022년은 이제 막 9월에 접어들었는데 이미 역사적인 해다. 굵직한 죽음들이 연이어 있었기 때문이다. 냉전 시대의 상징과 같은 인물인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도 바로 얼마 전 사망했고, 기자의 개인적인 영웅이자 세계 일러스트레이션계의 거인이지만 ‘꼬마’ 니꼴라로 더 잘 알려진 장자끄 상뻬도 올해 우리 곁을 떠났다.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88서울올림픽의 개회식을 기획했던 이어령 박사도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딸과 손자를 만나러 먼 길을 떠났다. 지난 몇 십년 일요일 아침을 그리운 함성으로 장식했던 송해 선생님도 2022년을 넘기지 못하셨다.

이런 인물들의 죽음에 우리는 저무는 시대를 논한다. 분명 여러 출판사들에서 연보 작업에 착수했을 터이다. 조용히 그 익숙한 이름들은 지면을 차지하고, 각종 책으로 만들어져, 여러 서가에 보관될 것이다. 후대는 이 해를 암기하고 통찰하기 위해 애를 쓰겠지. 우리가 이순신과 링컨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피카소를 기념하듯 말이다. 화려한 죽음이 이것이지 무엇이겠나.

그리고 우리에겐 또 다른 죽음들이 있었다. 역대급 태풍이었던 힌남노가 포항을 할퀴고 지나갈 때 지하주차장에서 안타깝게 돌아가신 분들과, 얼마 전 신당역에서 동료에게 살해당한 직원분이다. 이런 분들을 추모하는 방식은 위에 언급된 분들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인물 자체보다 죽음에 이른 경위가 중점적으로 기록된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리고 후회와 반성이 - 표면적이라 하더라도 - 애도의 주된 감정의 줄기라는 점도 큰 차이다.

이런 죽음은 역사책에 기록되지는 않지만, 높은 확률로 규정이나 법문을 수정하는 데 일조한다. 포항 주차장 사건이 일어났을 때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안전 규정 문제가 논의됐었다. 신당역 살인 사건을 통해서도 스토킹 범죄에 대한 처벌 규정과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관리 실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사실 우리가 지키고 있는 수많은 안전 규정들은 이전 세대의 피로 적힌 것들이 대부분이다. 원래 안전이란 지켜질 때는 보이지 않는 것이라, 피로 진하게 칠을 해야만 사람들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누군가 대신 흘린 피 위에서만 더 안전해진다.

아무도 이 희생자들의 죽음을 두고 저무는 시대를 논하지 않는다. 역사와도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적이라고 칭하는 그런 인물들의 죽음보다 더 직접적으로 남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고, 역사의 방향을 전환시키는 계기가 된다. 이름값이라는 게 핏값보다 진할 리 없는데, 그걸 우리는 알면서도 모른다. 추모의 행렬이나 활자광들의 필력이나, 어디서 더 활발히 나타나는지를 본다면 수긍이 갈 것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더 주목해야 할 것에 주목하리라’ 반성하게 하는 죽음이다.

하지만 이런 두 가지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남은 생명들에 발휘되는 죽음의 힘은 매우 세다. 가장 평범한 죽음이더라도 말이다. 역사라는 거대한 타이틀을 갖지도, 안전 규정의 변화라는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치지도 못하는 그런 죽음들이더라도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의 정해진 종말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끝낼 것을 끝내지 않으려고 발버둥친 결과물들을 보라. 끝이 오지 않을 것 같은 확신에서 나오는 결과물들을 보라. 썩지 않아 지구를 대신 썩게 하는 플라스틱, 지워지지 않아 사이버 범죄에 큰 도움이 되는 사이버 공간의 정보들, 일방적인 감정을 끝내지 못해 나타나는 스토킹, 내년과 그 후에도 계속해서 살아 있을 것 같아 지키지 않는 새해 결심들, 밤을 하얗게 새게 하는 상념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주머니들... 죽음을 상기함으로써 갖게 되는 겸허함이 더 만연했다면 없었을 것들이다. 결혼식은 놓쳐도 장례식은 꼭 가라는 옛말이 새삼 지혜롭다. 모든 장례식에는 숨겨진 선물이 하나씩 있고, 그 선물은 남아 있는 생명들을 이롭게 한다.

온갖 해커들의 손에 사용자와 기업들은 매일 죽는다. 생명 자체가 위협을 받지는 않지만 사회적 존속이 위태로워진다. 이 죽음의 애도 방법은 특이하다. 아무도 애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애도는커녕 손가락질을 한다. 보안 실천 사항과 규정이라는 것은 정보를 보다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것인데, 어쩐지 우리는 그것들을 회초리로 사용할 때가 많다. ‘여기 이렇게 알려 줬는데 왜 지키지 않았는가’. ‘수도 없이 말을 했건만 왜 미리 대처하지 못했는가.’ 

일리가 없지는 않다. 진짜 죽는 것이 아니니 살아 있는 날들을 전부 기회로 삼으라는 희망의 마음이 담겨 있는 소리라고 할 수도 있다. 죽음 같은 절망 속에서 그래도 아직 살아있다는 걸 되새겨주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니 망해도 싸다’라는 식의 저주와 같은 반응들이 보안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걸 듣고 있으면 의아하다. 정보보호라는 측면에서 죽음과 같은 경험을 한 이들에게 숨겨진 선물(즉,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교훈을 주는 것)을 찾아주는 데에 전문성을 발휘해야 하는데, 비전문가 ‘악성 댓글러’들도 할 수 있는 말을 하는 것에서 그치고 있으니 오히려 자신의 전문성과 전문가라는 타이틀에 죽음을 선고하는 언사가 아닐 수 없다.

보안 사고를 당한 조직의 실책들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것과 별개로, 보안 사고 소식과 함께 같이 죽어버리는 보안 전문가들의 전문성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실책이 너무 어이 없어 분개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내친 김에 전문성도 내팽겨치고 독설을 뱉겠다는 흐름이 이성적이지도 않고, 그 무엇도 살리지 못한다는 점을 짚고 싶었다. 이런 장례식에는 선물이고 뭐고 없다. 그래서 사이버 공격을 한 번 당한 조직은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이버 공간은 보안 전문가들에게 불리한 전장이라 승리하기 힘들다고들 한다. 하지만 침해 사고를 막지 못해 보안이 해커들에게 지고 있는 게 아니라, 재발을 막지 못해 지고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전장이 불리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불리한 전장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보안을 아무리 철저히 해도 모든 공격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아니라, 사이버 보안 사고를 한 번 당한 조직 대부분이 다시 공격의 표적이 된다는 통계 자료가 더 부끄러워야 한다. 죽음, 즉 사이버 보안 사고라는 어마어마한 선물의 기회를, 그 빛나는 전문성을 갖고도 살리지 못한 것이니까.

1,000번을 실패해도 한 번만 성공하면 이기는 쪽과 1,000번을 방어해도 한 번 뚫리면 지는 쪽의 싸움이란 비단 정보보안이 아니더라도 불공평하다. 이건 아예 방어자가 이길 수 없는 구도다. 거기서 해커와 보안의 승부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전장을 옮겨야 한다. 한 번 뚫린 곳에 다시 나타나는 공격자, 즉 어디에 도둑이 들 것인지 예측 가능한 전장이라면 적어도 지금처럼 압도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은 아니지 않을까.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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