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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요점을 짚을수록 물음표만 늘 수도... 보안은 좀 더 긴 여정
  |  입력 : 2020-05-14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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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17>과 최초의 마라토너 이야기에 등장하는 것, 전령과 메시지
사실의 나열이 때로는 혼란을 가중시킬 수도...이해를 끌어내기 위한 걸음 시작해야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어렸을 때 들었던 많은 이야기들 중 마라톤의 기원에 관한 것이 있었다. 아이용으로 만들어진 내용에 의하면 전쟁의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수백 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뛰어 결국 죽고 마는 한 고대 청년의 아름다운 헌신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종목이라고 한다. 사실 어린 마음에 그 이야기는 감동 대신 수많은 물음표만을 남겼다. 꼭 그렇게 죽을 정도로 뛰어야 했었나? 피신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이겼다는 내용을 전달하는 건데, 그게 목숨을 걸 정도였을까? 이게 무슨 수천 년씩이나 주기적으로 반복해서 따라해야 할 일인가? 등등...

[이미지 = 네이버 영화(1917)]


그 의문감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조금씩 옅어져 갔다. 사라진 게 아니라, 흐려진 게 맞다. 예를 들어 ‘꼭 그렇게 죽을 정도로 달렸어야 했을까’라는 질문의 경우, 그 청년의 마음을 전부 이해한 건 아니지만,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소식을 통신비에 대한 고려 없이 모든 지인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을 직접 느껴보고, 또 그 아이를 열흘도 안 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생각보다 쉽게 꺼지는 생명들을 여러 번 접하면서 ‘그럴 수도 있었겠다’라는 정도까지는 도달할 수 있었다. <1917>과 같은 영화를 보면서, 메시지를 들고 전진하는 자의 숭고함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도 다 이런 의문들이 옅어지는 과정과 무관하지 않았으리라.

한 번은 동네 아이들이 자전거를 안전하고 재미있게 탈 수 있도록 평평한 운동장 같은 곳에 석회가루로 트랙을 그려 주었다. 이미 한 손을 놓고 탈 정도의 누나와 형들은 바깥에서 마음껏 속도를 내게 하고, 아직은 기우뚱거리느라 속도를 못 내는데 거기다가 보조바퀴도 주렁주렁 달고 있어 길 막기 딱 좋은 동생들은 안쪽으로 모았다. 숙련자들은 발길에 차이는 동생들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고, 초보자들은 형과 누나들 눈치 보지 않아도 되었다. 안전과 재미를 다잡는 완벽한 해결책이었다.

가끔씩 노는 아이들 보러 나오는 부모들이 트랙 밖에 서 있곤 했는데, 그곳은 자연스레 정비소로 변했다. 잠시 앉아 있거나 물을 마시러, 그냥 엄마나 아빠한테 말을 걸고 싶어서 아이들이 예고 없이 트랙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는데, 이 지점이 이 완벽한 시스템의 취약점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나갔다가 들어갔다 하면서 충돌 사고들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바퀴가 굴러가고’, ‘넘어지지 않는 것’이 지상 최대 과제인 아이들이라 주변 상황을 살필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바로 코앞에서 누군가 갑자기 경로를 바꾸거나 진입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줘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마라톤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나의 어린 이해력 역시 그렇게 좁았을 것이다.

멀리까지 한 번에 뛰다가 숨이 차서 죽었대. 그래서 지금까지 마라톤을 한대. 이런 간단한 내용만으로는, 그것이 동화 내용 상 사실임에도, 아무런 설명이 되지 않는다. 트랙에 진입할 때 좀 더 주변을 봐야한다는 조언도, 아이들 스스로가 여러 감각을 익히기 전까지는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팩트’란 것을 선별해 나열하는 것이란, 또 그걸 제공한다는 것이란, 얼마나 막중한 일인가. 좀 더 넓은 차원의 시야 - 혹은 맥락 - 가 함께 곁들여지지 않는다면, 정확한 사실만을 열거한다고 해도 기대한 반응이나 효과(주로 설득과 이해)를 끌어내기가 어렵다는 걸 우린 살면서 자주 경험한다. 종종 TV에도 나오는 단답형 인터뷰이들을 볼 때 느끼는 답답함도 그 중 하나다.

그러나 모두가 팩트를 납득 가능한 설명으로 만들어 줄 만큼의 맥락과 함께 말하거나 들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요약본이 반드시 필요한 때가 있다. 다만 그러한 상황에 밀려,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진실이라는 것이 요약본만을 취한 자가 아니라 나중에라도 맥락 정보를 수집하는 귀찮음을 감수한 자에게 풍부하게 허락된다는 것을 잊는 건 곤란하다. 모든 물음표를 단박에 지워내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지워지도록 놔둘 수 있을 때 그 ‘속 시원함’이 보다 풍성해질 수 있다. 결론이 빠르고 단호한 사람들이, 대개 건조하고 외골수와 같은 면도 함께 가지고 있는 건 이 풍성함을 덜 경험해봐서가 아닐까.

보안만큼 답이 명확한 분야도 없다. 공격에 사용되고 위험의 시작이 되는 취약점은 고치는 게 맞으니까. 그것이 기술 결함이든 사람의 문제든 말이다. 그럼에도 보안만큼 물음표가 많이 떠다니는 분야도 없다. 답이 분명한데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는 건, 듣는 사람이 납득하거나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답을 준답시고 팩트들을 딱딱 늘어놓을 때, 답하는 자들만 명쾌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질문에 대한 답을 고를 때, 왜 그런 질문이 나오는지, 정말 해결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더불어 알려줘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 충분히 고려하고 있는가? 고려하고 있고, 그걸 잘 풀어내고 있는데도 이해시키지 못한다면, 트랙 위에서 자전거를 타는 우리 동네 아이들의 경우처럼 시야가 넓어지기를 기다릴 차례인 것은 아닐까?

보안 전문가들이 알고 있는 답들은 미래로 전달되어야 한다. 반드시 도달되어야 하고, 반드시 변화시켜야 한다. 하지만 아는 답을 입 밖으로 발설하는 건 전달이라는 큰 과정의 극히 일부일 뿐이며, 그 자체만으로는 별 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최초의 마라토너처럼, 영화 <1917>의 스코필드처럼, 내가 아는 내용이 상대의 행동에 꽉 박힐 때까지 그 메시지의 여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결지어야 한다. 때론 사회로부터 오는 보안 질문들을 단칼에 매듭지어줄 필요도 있지만, 때론 궁금하고 답답한 마음을 질문자와 함께 진득이 품고 한 꺼풀 한 꺼풀 벗겨나갈 수도 있어야 한다.

상대를 배려하라거나, 서비스 마인드를 갖추라는 것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보안 업계가 가지고 있는 답들이, 미래에 반드시 필요한 내용이라는 걸 자각할 때라는 소리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답들은 좀 더 가꿔져야 한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그 가꿈은 가치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가치가 있는 진리란, 분야를 막론하고 언제나 풍성함을 동반한다. 그 풍성함이 사람을 매료시키고 꿈꾸게 하며 삶을 걸게 만든다. 변화시킨다. 간단한 요점 몇 개로 답해주는 걸 넘어, 실질적 변화를 위해, 풍요로움을 꿈꾸며, 좀 더 긴 여정을 자원해야 할 때다.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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