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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실제 사건 육성 들어보니... 딸 바보 아빠 울린 ‘그놈 목소리’

입력 : 2023-03-07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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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수십년 경력의 베테랑 임원도 당한 보이스 피싱
약 4시간 동안 현금·금괴 약 4,000만원 갈취 당해
무섭다고 울며 빌던 여자 목소리, 진짜 딸 아닌 ‘사칭범’


[보안뉴스 이소미 기자] #. 서울 송파구에 사는 50대 A씨는 한 가정의 듬직한 가장이다. 그는 금융권에서 수십 년의 경력을 갖고 있는 베테랑으로 현재 서울 강남에 위치한 금융투자회사의 임원직을 맡고 있다. 그에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16살 고등학생 딸이 있는데 딸의 학업을 위해 캐나다 토론토로 유학을 보냈다. 딸은 캐나다 유학 기간 동안 홈스테이로 머무르고 있는 상황이다.

A씨는 딸을 애칭으로 ‘강아지’라고 부를 만큼 딸 바보인 아빠다. 그래서 그의 휴대폰에 저장된 딸의 이름도 애칭인 ‘강아지’로 저장되어 있다. 캐나다와 한국의 시차가 14시간이다보니 딸의 목소리를 들으려면 시간 계산을 잘 해야 한다.


지난 1월 13일, 그는 미팅이 잡혀 약속 장소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 때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바로 사랑스런 딸 ‘강아지’였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캐나다에 있는 딸과 통화하기에는 다소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토론토는 당시 현지시각으로 보면 새벽 3시 54분, 일러도 한참 이른 시간이었다. 그래도 그는 반가운 마음에 전화벨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딸의 전화를 받았다.

“우리 딸, 이 시간에 웬일이야?”

그런데 그의 사랑스런 딸은 뜻밖에도 흐느끼며 울고 있었다. 곧이어 딸이 울면서 말했다.

“아빠, 홈스테이 방 안에서 어떤 남자가 총을 들고 위협하고 있어.”

그는 순간 가슴이 철컹 내려앉았다. 딸의 목소리가 맞는지 안 맞는지 확인할 겨를조차 없었다. 그저 딸아이의 청천벽력 같은 말에 머리는 새하얘지고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캐나다에 홈스테이로 머무르고 있는 딸에게 당장 달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신고한다고 당장 해결될 일도 아니었다. 그 때 굵직한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국어로 능숙하게 말하는 것을 들으니 한국인 같았다.

“난 돈이 목적이야. 만약 경찰이 온다면 당신 딸을 죽일 거야. 이 전화 끊지 말고 당장 1만 달러 만들어서 지하철 5호선 몽촌토성 지하철역으로 가세요.”

[이미지=보안뉴스]


전화를 끊지 말라는 휴대폰 너머 범인의 협박, 딸의 신변이 위험한 상황에서 하필 휴대폰 배터리가 조금 밖에 남지 않았다. A씨가 협박범에게 배터리가 없다고 말하자 범인은 휴대폰 충전까지 지시하며 전화를 절대 끊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A씨는 겨우겨우 지하철 5호선 몽촌토성 역에 도착해 근처의 한 편의점으로 급하게 달려 들어갔다. 차량에 연결해 충전할 수 있는 휴대폰 충전기를 찾아 계산한 후 곧바로 포장을 뜯고 차에 돌아와 충전하면서 범인과의 통화를 이어갔다. 그는 협박범의 요구대로 역 근처 약 2백미터 가량 떨어진 현금인출기(ATM)에서 현금 800만원과 550만원을 각각 인출해 쇼핑백에 담고 이를 알렸다. 협박범은 돈을 수거할 사람을 보낸다고 말했다.

“몽촌토성역 2번 출구 앞에 서계시면 돼요, 지금 내가 보낸 애가 도착했거든? 가서 걔네한테 찾은 돈 넘겨 주고... 아저씨 옆에 와서 콜록콜록 할 거예요.”

그는 협박범의 말대로 현금 운반책 2명에게 현금 800만원과 550만원을 담은 쇼핑백을 건네줬다. 그렇게 몽촌토성역 근처에서 현금 1,350만 원을 빼앗겼다. 그러나 끝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에 불과했다. A씨는 여전히 휴대폰에서 울고 있던 존재가 그의 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전화를 잠시라도 끊고 신고를 하거나 사실 여부를 확인해 볼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예쁜 딸이 지금도 안전한 건지 목소리만이라도 듣고 싶었다.

“애 좀 한 번 통화하면 안 될까요?”

협박범은 한 순간의 틈도 내어주지 않고 “아직 끝나지 않았잖아”라며 딱 잘라 말했다. 협박범의 현금 탈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추가로 고가의 금을 구입할 것을 요구했다.

“롯데백화점 11층 한국금거래소라고 있어요. 금 파는데. 거기 가서 신용카드로 한도 되는 만큼 긁어서 골드바 사세요. 사서 잠실역으로 가세요.”

[이미지=utoimage]


협박범은 치밀했다. 어쩜 이리도 돈을 갈취하는 방법을 잘 알까. 협박범이 현금 유통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것을 보니 그냥 한두 번 해본 수법이 아니었다. A씨는 오로지 딸아이 생각에 범인에게 “애 좀 안정시키게 통화 좀 하면 안 될까요?”라고 다시 한 번 요청했다.

“애 바꿔줄게요. 야! 이리와봐”

그 때, 협박범은 일말의 의심도 없애려는 듯 딸과의 통화를 허락했고 그의 딸이 전화를 건네받았다. “어...” A씨는 다급했지만 딸을 안정시키기 위해 될 수 있는 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세요? 걱정하지 마. 아빠가 지금 처리하고 있으니까 무서워하지 말고 어... 무서워하지 말고”

딸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흐느끼는 목소리로 “무서워... 무서워...”라며 조아렸다. 무섭다고 흐느끼는 딸의 목소리를 들으니 또 다시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그런 딸을 그는 다시 위로했다.

“무서워하지 말고”

그는 결국 협박대로 전화가 끊어지지 않게 해야 했기 때문에 갓길에 차량을 세워두고 휴대폰을 충전기에 꽂아둔 채 롯데백화점에서 920만원 상당의 금괴를 구입했다. 구입한 금괴를 오후 7시 25분 잠실역에서 운반책에게 또 다시 전달했다. 협박범은 자신의 요구대로 A씨가 움직여주자 더 대담하게 세 번째 방법을 제시했다.

“지금 집에 가서 집사람 신용카드하고 체크카드 챙기고 집에 있는 다른 신용카드 챙겨서 나와서 나머지도 찾으세요. 할 수 있는데 까지. 오케이?”

‘할 수 있는데 까지’라니, 협박범은 A씨를 쥐고 흔들 듯이 줄기차게 갈취를 시도했다. 그러면서도 딸에 대한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를 더하며 그의 딸을 성폭행할 수 있다는 암시까지 내비쳤다.

“지금 애가 몇 살이야? 이제 한... 열여섯? 성인 안 됐지? 아직”

그 말을 들은 A씨는 더 조급해졌다. 이제 정말 끝일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뒤에도 협박범의 돈 요구는 계속됐다.

흔히 보이스피싱 예방법으로 ‘전화를 끊고 사실 확인을 하라’고 한다. 그러나 이 협박범은 잠시라도 전화를 끊을 찰나를 내어주지 않았다. 심지어 지인에게 추가로 돈을 빌려야 하는 과정에서 “통화 내역 화면을 캡처해서 보내라”고 할 만큼 범인은 치밀했다. 결국 A씨는 집에 있던 현금 1천만원을 저녁 8시 40분에 강남역에서 전달하고 지인에게 빌린 나머지 현금 700만원을 선릉역 ATM기기에서 뽑아 삼성역에서 각각 젊은 남성 운반책에게 전달했다.

몽촌토성역부터 시작해서 서울의 중심지까지 쉴 새 없이 현금을 갈취당했다. 어느덧 날은 캄캄해지고 벌써 시간은 밤 9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그제야 협박범은 “오늘 수고했어. 복 많이 받아. 돈 잘 쓸게. 건강하고 안전한 것에 감사하고 잘 사세요”라고 비아냥거리며 마지막 한 마디를 남겼다.

‘수고했다’는 말을 협박범에게 듣다니, 딸을 잃을 뻔했던 그는 말문이 막혔다. 그렇게 협박범과의 통화는 3시간 43분만인 오후 9시 37분쯤에야 완전히 끝낼 수 있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A씨는 강남경찰서로 달려갔다. 오후 10시, 드디어 그는 진짜 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딸과 직접 통화하고 나서야 그는 하루 동안 겪은 모든 일이 보이스피싱 사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협박범이 딸에 대한 정보를 너무 세세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A씨는 그 상황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할 수 없었다. 유학 중인 딸의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온 데다, 딸이 현지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있다는 것까지 알고 실제 납치 상황인 것처럼 꾸민 교묘하고 치밀한 사기 수법에 수십 년 금융권 경력을 가진 그도 감쪽같이 속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서울 중심 강남 한복판에서 현금 수거책들을 만나며 거액을 뜯길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A씨는 이날 약 4시간 동안 5차례에 걸쳐 무려 3,970만원의 금품을 갈취당했다. 혹여 딸이 험한 일이라도 당할까봐 협박범의 모든 지시를 순순히 이행했던 것이다.

“전 전화를 끊을 때까지도 이게 보이스피싱인 줄 몰랐어요. 딸이 캐나다에 있고 심지어 홈스테이 중이라는 사실까지 알고 있어서 정말 큰일이 났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통화를 끊지 못하게 했으니까 신고 전화는 할 수 없었는데, 그리고 또 만약에 신고했다가 알아버리면 딸을 해코지를 할까 봐...”

그는 이어 “경찰이 보이스피싱이라고 얘기하는데도 믿기지 않았어요. 후유증이 너무 커요. 후회감과 분노가 너무 막심합니다”라며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보이스피싱 사건 그 후...]
경찰은 최근 해외 유학생과 가족들을 상대로 한 보이스피싱 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A씨 딸이 당시에 이용했던 유학원의 인적정보가 해킹 당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 중에 있다.

현재 한국의 보이스피싱 범죄는 전년 대비 30% 가량 대폭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나 여전히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을 사칭해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며 금품을 탈취한 이번 사건은 개인정보를 악용해 딸을 납치했다고 속인 대표적인 사례이다. 아무리 가족이나 지인의 번호로 걸려온 전화라도 돈을 요구한다면 사기일 가능성이 높다. 가족에게 직접 연락해 확인하는 방법이 가장 확실하겠지만, 만약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112 문자’로도 신고와 문의가 가능하니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한다. ‘확신’하지 말고 ‘확인’하는 습관이 자신과 가족 모두를 지킬 수 있다.
[이소미 기자(boan4@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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